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숀 코너리 (문단 편집) == 활동 ==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같은 시기의 대다수 [[영국인]] 배우들과는 달리 정식 연기수업을 받지 않았다. [[우유]] 배달부를 시작으로 [[영국 해군]]에서 [[수병]]으로 복무하는 등 잡다한 직업을 전전하다 미스터 유니버스 중량급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을 계기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다. 다만 당시 연기는 눈에 띄게 뻣뻣하고 어색해 [[단역]]을 전전하며 빈곤한 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007 [[제임스 본드]]역에 캐스팅된 것을 계기로 절치부심한 끝에 명배우로 각성,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의 어색한 당시 연기는 007 캐스팅 직전에 찍은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1962)[*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연합군과 독일군 양쪽의 처지에서 영상화한 작품. 무려 180분의 상영시간에 당대의 톱스타와 당시에는 무명이었지만 이후 톱스타가 되는 수많은 배우가 총출연한 전쟁영화의 걸작이다. 원제목은 'The Longest Day'로 '사상 최대의 작전'으로도 번역하는 예도 있다.]에서 볼 수 있는데 007 원작자 [[이언 플레밍]]은 이를 보고 [[고릴라]] 같다고 혹평했고[* 그래서 처음 007에 캐스팅되었을 때, 이언 플레밍은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숀 코너리를 지켜보니 제임스 본드에 어울린다 인정하게 되었고 아예 소설 속 본드를 숀 코너리의 고향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바꾸었다!] 다수 평론가도 동의한 바 있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 역으로 연기력이 발전한 후인 64년의 [[히치콕]] 영화 《마니》에서는 같은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제임스 본드 역과 함께 주로 액션이 필요한 배역을 많이 맡았지만, 자신의 이미지가 007역에 묻혀간다고 판단, 고심한 끝에 배역을 거절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국적불명의 [[이탈리아 영화]]나 C급 괴작 영화에 출연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으나 《[[오리엔트 특급살인]]》으로 메이저 작품 복귀에 성공, 재기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그의 동생 닐 코너리도 숀과 매우 닮았는데, 007로 숀이 유명해지자 한 이탈리아 제작사에서 닐 코너리를 주인공 -그것도 007의 동생이라는 설정!-으로 기용하여 'OK 코너리'라는 3류 첩보영화를 찍었다. [[M]]역에 실제 007 시리즈에서 M을 맡았던 버나드 리, [[본드걸]]로는 007 [[위기일발]]의 다니엘라 비앙키 등 007 시리즈의 실제 출연진들까지 조연으로 기용했지만 불행히도 닐은 형과 외모만 닮았지 연기력은 전혀 닮지 않았고 영화는 대 참패. 그래도 한국 [[KBS]] [[명화극장]]에서 '암호명 테투안'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적이 있다.] [youtube(kbGVIdA3dx0)] 007 배역 거부 후 찍은 영화 중 가장 유명한 희대의 C급 [[컬트]] [[SF]] 영화 《[[자도즈]]》(1973)의 예고편. 감독 [[존 부어만]]도 [[엑스칼리버]]로 칸 영화제 예술공헌상까지 받은 감독이다(...). 연기 도중 얼굴에 입은 부상으로 배우 생명이 위험에 처해 상처를 [[수염]]으로 가렸지만, 오히려 이후 그 수염이 그의 상징이 되었다. 넓어져만 가는 이마로 [[가발]]을 쓰거나 머리를 심는 등 ~~헛된~~ 노력을 계속했던 적도 있지만 결국 대머리 이미지를 밀어붙여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이런 이미지 변신 후 찍은 유명한 작품으로는 《[[더 록(영화)|더 록]]》, 《[[붉은 10월]]》,《[[장미의 이름]]》이 있다. 1987년 《[[언터처블(미국 영화)|언터처블]]》에서 [[케빈 코스트너]]를 돕는 노장 경찰 말론 역을 멋지게 소화해서 그 해 [[아카데미상/수상 기록|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일부에선 《[[언터처블(미국 영화)|언터처블]]》에서 숀 코너리의 연기는 [[발연기]]라 불릴 만하며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수상 중 최악의 수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화사 '''최고의 [[캐릭터]] [[제임스 본드]]의 영화판 [[이미지]]를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종의 공로상으로 받았다는 악평이 그것. 일단 그 당시 많은 평론가들이 공로상으로 간주했던 건 사실이지만 말론 [[경감(계급)|경감]]은 흔히 말하는 '산전수전 다 겪은 현자' 캐릭터로 코너리의 연기는 '명품 조연'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들어맞을 정도로 일품이었다. 이는 '언터처블'에 대한 평론가들의 몇몇 평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연기는 '숀 코너리가 연기하면 숀 코너리가 그 배역이 되는 게 아니라 그 배역이 숀 코너리가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 쉽게 말해서 해당 배역으로 일단 코너리가 출연하면, 다른 배우가 같은 배역을 맡는 걸 상상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뜻. 연기가 일품인 것은 틀림없지만, '''배역이 배우에게 먹혀버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은퇴할 때까지 말투에서 스코틀랜드 억양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는[* 못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스코틀랜드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서 굳이 고칠 노력은 안 한다고 볼수도 있다. 사투리 안 고쳐도 잘만 캐스팅되는데 뭐하러 고칠 것인가. 오히려 숀 코너리와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 배우들의 영향으로 미국쪽에선 영국식 영어 악센트,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고 개성있는 스코티시 악센트를 배우려고 하는 성우와 배우들도 많이 있다.] 약점도 있었다. 영화 《[[붉은 10월]]》에서 그가 맡은 [[마르코 라미우스]] 함장과의 싱크로율을 생각하면 그 말이 농담은 아닌 듯하다. 몇몇 평자들은 언터처블 대신 그가 출연한 [[시드니 루멧]] 영화들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한창 준비 작업에 있던 1999년 [[간달프]]역을 제의받은 적이 있다. 당시 뉴 라인 시네마는 영화수입의 10~15%를 출연료로 지불하겠다는, 지금 보면 엄청난 제의를 했다. 만약 숀 코너리가 출연에 응했다면 그는 '''4050억원을 받았을 것이다.''' 숀 코너리라 하면 제임스 본드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그 당시 뉴스의 댓글도 재미있다. 코너리가 간달프를 하면 본드걸처럼 마법사 걸이 나온다든지... 하지만 코너리는 원작 소설도 읽었고 대본도 읽었지만 반지의 제왕 스크립트를 난해하다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뉴질랜드]]에서 18개월이나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시하며 거부했다. 그 직후인 2000년에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2003년 《[[젠틀맨 리그(영화)|젠틀맨 리그]]》에 출연했으나 이 과정에서 감독인 스티븐 노링턴과 극심한 마찰을 빚었고 더 이상 연기를 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2006년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로부터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헨리 존스]] 박사 역으로 다시 나와달라는 제의를 받았고 은퇴 번복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스필버그와의 예술관의 차이와 은퇴생활의 즐거움, 그리고 헨리 존스 박사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조연이라는 이유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사실 해리슨 포드가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출연했을 당시 이미 숀 코네리가 최후의 성전에서 헨리 존스 박사 역을 맡았을 때의 나이를 뛰어넘어 버렸기 때문에 후속작에 출연하는 게 오히려 납득이 가지 않았을 수 있다.]이후 2005년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대해서 멍청한 제작자들이 능력있는 배우와 감독들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이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2006년, [[조지 클루니]], [[스티븐 소더버그]], [[숀 펜]] 등을 근면하고 창의력있는 인물들이라고 언급하면서 돈 벌 생각밖에 없는 멍청하고 게을러빠진 할리우드 영화 시스템의 희생자들의 예시로 제시했다. 젠틀맨 리그 제작 과정에서 한이 굉장히 많이 쌓인 듯.... 다만 2006년의 은퇴 선언 이후에는 그렇다고 해서 감독들이 자신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마피아들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수준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 복귀 가능성은 완전히 끝난 것으로 보이며 2010년 8월 25일 80세 생일에 공식적으로 배우 은퇴를 재확인했다. 실사영화 마지막 연기는 위에서 언급한 젠틀맨 리그다. 2011년, 코너리의 친구인 [[마이클 케인]]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코너리에게 새로운 영화를 제작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가 절대로 안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더불어 케인은 코너리의 은퇴가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코너리에게 노인 조연 외에는 더 이상 시키려 하지 않아서 코너리가 실망한 것이 코너리의 중대한 은퇴 사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코너리는 로맨스 연기를 좀 더 하고 싶었었다고... 다만 실사 연기 이후에도 성우 연기는 가끔 하고 있는데 2005년 그의 1963년 출연작이었던 [[007 위기일발]]이 게임화되자 제임스 본드 성우로 잠시 복귀했었다. 코너리 자신이 007 영화 중에서 위기일발을 자신이 제일 좋아하며, 손자들이 비디오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하기로 했다고. 2012년에는 애니메이션 미스터 빌리: 하일랜드의 수호자(원제: Sir Billi the Vet)의 주인공인 빌리의 성우를 맡기도 했다. 성우도 주인공 역만 맡은 걸 봐서 노인 조연 역할에 지쳤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긴 한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